[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 국민학생 딸을 둔 평범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독학에 힘쓰던 중학생, 동생과 함께 길을 잃은 국민학생. 1987년 내무부(현 안전행정부) 훈령 410호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가를 향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8일 오전 10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모임(이하 피해생존자 모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한국의 홀로코스트-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을 열고 “수많은 피해생존자들을 위해 하루빨리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당시 신민당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수용자의 약 85%가 경찰이나 구청공무원에 의해 잡혀온 사람들이었고, 자의적 해석으로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들인 국가적 인신매매였다”며 “전두환 정권에서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정화’란 이름으로 정당화시킨 국가폭력 사건”이라고 말했다.
전두환 정부시절 발생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형제복지원 사건은 당시 원장인 박인근에게만 비난의 화살이 쏠린 상황이다. 국가법과 국가 공무원의 방만한 관리·감독·방조 등에 의해 인권유린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이 국가가 아닌 개인만을 향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여준민 대책위 사무국장(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당시 사건을 맡았던 김용원 변호사의 발언을 빌려 “1987년 수사 당시 청와대에서도 연락이 올 정도로 외압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지역에 있는 복지시설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굵직한 인물들이 얽혀 유착관계가 상당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형제복지원 사건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난(蘭)을 보내 축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과 비판을 받았다. 청와대는 보도가 나간 지난 4일 이후 곧바로 "관례에 따른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국가 정책으로 벌어진 작금의 상황에 최소한의 예의도 보이지 않는 정부는 이 일과 맞물려 다시 한번 낮은 인식 수준을 스스로 드러내 보인 셈이 됐다.
“복지위원회 배치는 영혼 짓밟는 행위”
피해생존자 모임과 대책위는 지난달 24일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및 54명의 의원이 법안 발의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형제복지원법)’ 소관 상임위가 보건복지위로 배치된 것과 관련해서도 정부를 향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내비쳤다.
대책위는 “정부 차원에서 벌어진 과거사 사건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는 힘겹게 살아남은 피해생존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의문의 죽임을 당한 넋들의 영혼까지 짓밟는 행위”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강경선 대책위 상임대표는 “생계가 막연하신 분들이 오셨는데 점점 울분이 솓아오르는 게 걱정이 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행부가 나서서 진상규명을 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거듭 언급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30여 명은 각각 자신이 겪었던 복지원의 참상을 낱낱이 말하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쏟았다.
피해자 김희곤 씨는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고도 나설 수 없고, 말릴 수 없는 상황에서 수도없이 비애감을 느꼈다”며 “청춘을 다 빼앗기고 청소년기를 말살 당했는데 복지원에서 나올 때 그동안 일한 대가라며 4만2천 원을 쥐어줬다”고 울분을 토했다.
고학에 심취해있던 당시 중학생 최승우 씨와 동생과 함께 길을 잃어버린 한종훈 씨도 “대체 우리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하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며 “복지원을 나온 이후에도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등 트라우마가 상당하다”고 고백했다.
증언대회를 마치며 한종선 씨는 “(이 시점에서 더이상) 과거얘기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1987년처럼 2014년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이 또 다시 묻힌다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위를 높여 비판했다.
앞서 피해생존자 모임은 이날 오전 9시 20분에는 국회 앞에서 진상규명 촉구 및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당사자조직으로서의 활동 목표와 현재 정부가 보이고 있는 사건의 축소·왜곡을 자행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
한종선 피해자생존자 모임 공동 대표는 “‘우리도 사람이다. 우리도 인권이 있는 인간이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피해 생존자들이 모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의 출범을 알린다”고 선언했다. 이어 “우리의 목소리가 국회에 전달돼 진상규명이 되는 날까지 한 목소리로 외칠 것”이라며 “안행부 차원에서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국가, 국민, 언론 모두) 도와 달라”고 주문했다.
함께 자리한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아직도 국가는 여러분의 부모, 누나를 찾아주지 않고, 생사불명인 많은 사람들을 기억해주지않았다”며 “살아 돌아와서 진상규명을 외치는 데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1987년) 복지(형제복지원)에 버렸던 국가가 또다시 복지위(원회)에 버리고 있다”면서 “형제복지원을 내세워 인권 압살, 인명 살상한 국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확실히, 낱낱이 고발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외쳤다.
한편 이날 증언대회에는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문재인·박영선·남윤인순·유은혜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대회장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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