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 “증인들의 주장과 타블로이드적 담론, 흥분된 여론만 남았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북스리브로에서 열린 ‘<살아남은 아이> 저자와의 만남’에서 공동저자인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가 이 같이 말하며 “특별법 제정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87년 사회로 터져 나온 이 불편한 사건은 27년이 지난 2014년 현재도 제자리걸음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인 한종선 씨는 이를 두고 “데자뷰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데자뷰란 전혀 다른 사건이나 사람 등이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형제복지원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진상조사 없이 복지원 폐쇄로 마무리를 지으려했던 지난 1987년 정부와 2014년 현재 정부의 모습이 똑같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사건발생 당시 정부는 진상조사를 건너뛴 채 복지원 폐쇄로 법인 해제 조치만 내렸다. 당시 내무부(현 안전행정부) 훈령 410호라는 국가법에 근거해 벌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세상 밖으로 나오자 이를 급하게 폐기시킨 것이다.
27년이 흐른 현재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및 여야의원 54명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형제복지원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대책에 나섰고, 이 법안은 현재 의안 심사 중이다.
그러나 국가정책에 의해 자행된 이 사건은 단순 ‘복지’문제로 그 의미가 축소·퇴색된 채 국회 내 보건복지위원회에 배치돼 있다.
대책위 상임대표인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강경선 교수는 “내무부(안전행정부 전신) 훈령에 의해 자행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로 배정돼 있는 상황”이라며 납득할 수 없음을 내비쳤다.
국회 의안과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사회복지시설에서 벌어진 인권침해라는 점 ▲현재 내무부 훈령 410호가 폐기됐다는 점 ▲87년 이후 보건사회위원회에서 조사를 한 점 등을 이유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사건은, 진상조사·진정성·반성이 모두 증발되고 눈앞의 해결에만 초점이 쏠린 상태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끝났다”고 결론 난 그간의 국가적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남겨진 허탈함과 공허함에 치를 떨어왔다.
1987년에 머물러있는 2014년 ‘국가·언론·여론’의 태도
대체로 과거 굵직한 사건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사건발생→정부의 묵묵부답→선정적 저널리즘·흥분한 여론→관련 기간 폐쇄(진상조사X)→특별법 제정→사건 반복’의 과정을 답습했다.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고정 레파토리가 30년이 다 돼가는 한 사건 맞물려 무한대로 유효할 것 같다는 것이다.
심지어 1980년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라는 명분으로 인권탄압이 자행된 ‘삼청교육대’조차 국가 범죄로 보지 않는 시선도 일부 존재한다. 전 교수는 이 지점과 관련, “국가 폭력에 동의할 수 있는 의식적 주체도 모두 공범”이라고 칭한다.
피해자들의 선정적인 경험만을 내세운 선정적 저널리즘과 그로인한 흥분된 여론이 결합돼 감정적 소용돌이에 머무르는 수순을 밟기 때문이다. 답습하는 정부와 인식 부재한 언론·여론이 가져온 데자뷰 현상이다.
타블로이드적 담론을 던지는 언론과 끓어오르는 여론은 판박이다.
언론은 선정적 담론을 내세워 기회주의적으로 접근했다 사라지며, 여론은 피해자의 경험과 가해자에 분노한다. 딱 이 뿐이다. 언론과 여론은 분노에 에너지를 소모할 뿐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는 힘을 모으지 않는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27년 전 대한민국은 복지원 ‘폐쇄’와 내무부 훈령 410호 ‘폐기’로 사건을 덮었지만 2014년은 달라야한다. 들끓지만 말고 들고 일어나야 한다.
배우 김의성 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대한민국이 문명화된 사회냐 아니냐 하는 큰 분필 같은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2014년을 기점으로 미개한 사회에서 성숙한 사회로의 건너뜀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인슈타인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다”라고 말한 바 있다. 1987년과 2014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대한민국 우리사회는 진정 정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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