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 100일도 채 되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이하 의협)가 정부의 ‘서비스산업 발전 방안’ 등을 의료민영화로 규정하고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지난해 12월15일)’를 연지 95일째다.
의협은 그간 병원의 자회사 설립과 원격진료, 건강보험제도(이하 건보) 개혁 등을 반대하며 정부를 상대로 연일 날을 세워왔다. 이 과정에서 노환규 의협회장은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와 의협은 결국 지난 1월 17일 원격의료·영리병원 중단과 건보개혁 등의 논의를 위해 ‘의료발전협의회’를 구성하고 첫 대화에 나섰다. 이후 2월 18일 양측의 합의가 전제된 ‘제1차 의료발전협의회’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노 회장은 협의안 발표와 관련해 돌연, “양측(의협과 정부)의 입장 차이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계는 한 달 만에 틀어졌다. 정부는 의협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고, 파국은 결국 ‘집단휴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오는 24일로 예정된 2차 총파업을 앞두고 정부와 의협은 각각 고민에 빠졌다.
정부의 경우 의료법 개정안 처리 강행으로 반발심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의협의 경우 ‘생명을 볼모로 밥그릇 싸움에 열중한다’는 여론의 질타가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이들은 결국 지난 16일 두 번째 대화시도에 나서 제2차 ‘의료발전협의회’ 협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의협과 정부는 이번 협의 결과를 두고 각각 만족스럽다는 평을 내놨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국민들은 강력 반발했다.
의협이 자해까지 무릅쓰고 반대 결의해왔던 ‘원격진료’와 ‘의료영리화’ 등을 사실상 허용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문제점 개선을 위한 시범사업 실시, 논의 기구 마련 등의 과정을 거치기로 했으나 결국 ‘의료민영화’를 위한 수순 밟기라는 지적이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이번 협의안에서 의협은 왜 만족한다는 자평을 내놨을까. 이 지점에서 의협의 속내가 드러난다. 핵심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조개편'이다.
건정심은 수가(의사 등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제공하는 돈)와 보험료를 결정하는 핵심기구다. 의협과 정부는 이번 협의 결과에서 건정심의 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同)수로 추천해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연내에 추진키로 했다.
그동안 건정심의 위원은 정부추천 공익위원과 가입자(노동자 및 사용자 단체), 의료계가 각각 8명씩 총 24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이번 협의에서 정부가 정부추천 공익위원 절반(4명)을 의료계에 내주기로 합의함에 따라 정부추천 공익위원 4명, 가입자 8명, 의료계 12명의 구성이 될 전망이다. 수가와 보험료 인상을 반대하는 측과 찬성하는 측이 12대 12로 팽팽해져 수가를 올리기가 수월해진 셈이다.
결국 의협이 원한 것은 의협 자율에 의한 정책 추진, 즉 ‘관치의료 저지’다. 밀실야합이란 비판도 이 지점과 맞물린다.
보건의료 시민단체 등은 이번 협의 결과와 관련, 의협을 향해 “휴진을 빌미로 수가인상을 따냈다”며 “밀실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여론의 ‘의료 영리화 반대’를 등에 업고, 의협이 건정심 구조를 의료 공급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했다는 얘기다.
이들은 지난 18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협이 (이번) 합의를 두고 ‘자신들의 요구가 대폭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의협은 애초에 의료민영화를 저지할 생각이 없었음을 고백하는 것 일뿐”이라며 원천 무효를 주장했다.
애초 정부는 1977년 의료보험을 처음 도입할 당시 의사들의 몫(수가)을 대폭 줄였다. 그 결과 국민이 내야할 진료비는 줄었다. 이 때문에 의료수가가 인상되면 건보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정부가 올해부터 도입되는 ‘4대 중증질환’과 ‘3대 비급여 항목’까지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할 방침을 밝힌 만큼 의료수가 인상과 함께 국민에게 지어질 건보료는 폭탄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제는 의협이 이 과정에서 국민이 떠안게 될 의료비 폭등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1인당 국민의료비 증가로 살인적인 의료진료비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 의협은 결국 ‘의료 영리화 반대’ 프레임으로 의사들의 숙원사업이었던 ‘건정심 구조 개편’을 이끌어냈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1인당 의료비 지출은 2천198달러로 OECD 평균(3천322달러)보다 낮다. 그러나 1인당 국민의료비 연평균(2000~2009년) 증가율은 9.3%로 OECD 국가의 평균(4.1%)을 2배 이상 훌쩍 뛰어 넘는다.
복지부가 발표한 ‘2011 국민의료비 및 국민보건계정’에 따르면 이 추세가 계속 될 경우 2007년 GDP(국민총생산) 대비 6.4%에 불과했던 국민의료비는 2015년 10.2%로 증가해 OECD 평균(10.5%)을 추월한다. 2024년에는 16.8%로 증가하면서 OECD 평균(11.54%)을 넘어서게 된다.
의협이 국민을 등에 업고 챙긴 이권으로 1인당 국민의료비는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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