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2013년 체제 논쟁 가운데 출범한 박근혜 정부 이후에도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들이 정치권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여의도 정치권과 국민 담론 사이의 간극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1987년 4월 전두환 독재정권에 항거한 1987년 6월 항쟁은 한국 정치사의 ‘대통령 직선제’ 등 87년 체제를 안겨주며 절차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의 당선으로 정권교체가 미완에 그친데다 92년과 97년 대선에서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각각 권좌에 오르면서 한국 정치는 한동안 3김(三金) 영향력 아래 있을 수밖에 없었다.
87년 이후 ‘YS의 영남-DJ의 호남-JP(김종필)의 충청’ 등의 지역구도가 총·대선을 막론하고 선거판을 휩쓴 것도 3김 정치의 영향력과 무관치 않다. 영남지역의 ‘우리가 남이가’, 호남지역의 ‘목포의 눈물’, 충청권의 ‘핫바지론’이 선거철마다 불거진 이유도 이 지점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해 대선에 앞서 본격화된 2013년 체제 논쟁은 87년 체제가 내포한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 등 새로운 의제로 나아가자는 발상에서 촉발됐다.
문제는 3김 정치는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출범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지만, 3김 정치의 한계인 지역주의는 여전히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87년 체제로 출범한 민주화로 제도는 한 단계 승격했지만, 정당과 선거 문화는 여전히 지역주의에 매몰되는 퇴행적 정치문화가 만연돼 있다는 얘기다.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독식이 한국 정치 문화를 지배하는 하나의 큰 흐름인 셈이다.
상도동-동교동 움직임 본격화…양날의 검인 까닭
이런 가운데 최근 상도동(YS)계와 동교동(DJ)계 정치원로들이 정치 행보를 본격화했다.
양김(YS-DJ) 원로들이 모인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이하 국민동행)’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을 거론하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위를 예방하고 평화를 수호할 수 있는 국민운동과 청장년의 건설적인 사회운동에 밑받침을 놓는 데 힘을 모으고자 한다”라며 출범을 공식화했다.
국민동행에는 상도동계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동교동계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주축으로, 민주당 이부영·정대철 상임고문과 차선각 전 YMCA 연맹 이사장, 구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인명진 목사, 영담 스님 등 종교계 원로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독점적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운동 등 새로운 정치개혁 운동을 기치로 내걸고 현실 정치에 뛰어들 태세지만 ▲지역주의 ▲계파정치 ▲카리스마에 의한 일원적 리더십 등의 한계를 지닌 이들의 등장으로 ‘올드보이(OB)의 귀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 이들이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신당에 기대 야권발(發) 정계개편 과정에서 지분을 얻으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야권발 정계개편 과정에서 이들이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사이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YS 산악회) 회장은 15일 <에브리뉴스>와 통화에서 “상도동과 동교동계 인사들이 향후 정치를 재개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자유겠지만, (국민동행의) 집단적 결정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조금 빠른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노 전 회장은 국민동행 출범과 관련해선 “과거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이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중추적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 뒤 “그런데 양김이 흩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상도동과 동교동계의 정치행보는 YS와 DJ의 역사재평가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으로 사표에 따른 민의왜곡, 망국적인 지역주의 등 87년 체제의 한계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당 밖으로는 지역주의, 정당 안으로는 계파보스 정치 등으로 한국 정치의 낙후성만 심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실제 득표수와 정당 의석수의 심한 괴리를 초래하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와 독일식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으로 개편하자는 움직임이 일 전망이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거대 양당의 구도는 제도개편의 문제로, 선거구제 개편 없이는 이를 타파할 수 없다”면서 “선거구제 개편이 정치개혁의 핵심이지만, 현재 박근혜 정부에선 개정 논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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