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로 변신한 작곡가 이야기..."나는 언제나 작곡 중이다"
소설가로 변신한 작곡가 이야기..."나는 언제나 작곡 중이다"
  • 조승은 기자
  • 승인 2012.10.28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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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엄마의 마지막 눈물』 저자 이순교

대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작곡가로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소설로 펴낸 저자 이순교씨는 합창곡 ‘염소와 촌할아비’, ‘노인과 바다’등을 작곡한 클래식 작곡가이다.

지난 7일 작곡가이자 소설가인 이순교씨를 만나 어린시절의 이야기와 작곡이야기, 그리고 현명한 어머니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책의 제목은 직접 정한 것인가.
▶ 제목은 글을 쓰면서 생각을 했다. 출판사 사장의 입김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책을 팔아야 한다는 입장이니까. 출판사 사장과 함께 의논 했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처음 생각한 것은 ‘엄마의 눈물’이었다. 출판사 사장이 ‘마지막’을 넣으면 어떻겠냐 해서 ‘엄마의 마지막 눈물’이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엄마의 눈물’보다 ‘엄마의 마지막 눈물’ 더욱 감칠맛 나는 제목 같다.

― 책을 쓰게 된 계기.
▶ 출판사 사장님과 인연이 있어 책을 쓰게 되었다. 선화예고에서 음악교사를 할 때 그분이 독일어 교사였다. 근데 어느 날 출판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간이 나왔다면 책한 권을 주었는데, 나에게는 그리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헤르만헤세의 책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스위스의 어느 별장에서 수필식으로 쓴 책이었다. 노인이 썼구나 하는 것이 너무 표시 나더라. 세상은 엄청나게 돌아가고 있는데 이 사람은 아직도 몇 십년 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미안’처럼 영원히 남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생각은 시간과 더불어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만연체로 천천히 써내려간 글이 나에게는 재미가 없었다.

출판사 사장과 술 한 잔하며 내가 써도 잘 쓰겠다는 농담을 했는데 현실이 되었다.
독일에서 함께 유학생활을 하면 단편소설을 몇 번 보여주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글을 써보라고 권하더라.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 한 달 반 만에 완성했다. 잘썼다, 못썼다를 떠나서 내 삶 자체가 재미없는 삶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또한 글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 주인공은 소년인가, 엄마인가.
▶ 소년은 나다. 내가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엄마가 주인공이다. 글 속에 은근하게 엄마의 모습을 그려넣었다. 자주등장하지는 않지만, 현명한 어머니 덕에 내가 행복하게 자란 이야기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는데 성인이 되어보니 ‘내가 정말 행복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친구들이 보면 ‘지자랑 하고 있네’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사람은 어머니가 현명하신 분이었다는 것을 알수도 있을 것이다.

― 책 속에 등장하는 광명원은 어떤 곳인가.
▶ 광명원은 6.25참전으로 인해 상처받고 눈이 먼, 즉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이는 곳이다. 그 곳의 아이들과 여인들은 장애인이 아니었다.

― 광명원에서 나고 자란 것은 사실인가.
▶ 사실이다. 책의 내용 100%가 사실이다. 사실이지만 자서전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서사시적인 부분들이 책에 섞여있기 때문에 나의 경험담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광명원에서는 4학년 때까지 살았다. 20여 년 전에 한번 가보았는데 이미 없어진 뒤였다. 책의 내용처럼 어린 시절에는 버스에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갔어야 했는데 도시가 확장되었더라. 그때 함께 마을에 살던 어르신들은 거의 다 돌아가셨을 테고... 그리고 동네가 개발되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그곳이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모두들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경제적 형편만 된다면...

우리마을 보다 높은 곳도 물론 있었지만 학교에서 소풍을 가도 우리 마을보다 아래로 갔다. 소풍을 마치고 집에 갈때면 다른 친구들은 모두 산 아래로 내려갔는데 나 혼자 산위로 올라갔다. 그런것들이 고생이 되었던 것은 아니고 , 특수한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서그런지 열등감이 생기고 그러한 열등감들이 작곡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 차기작 계획은.
▶ 요즘은 작곡하기 바쁘다. 작곡 자체가 워낙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아이디어는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책을 또 쓸 것이다.

― 작곡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가
▶ 베토벤이 ‘내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은 이세상의 모든 불행에서 벗어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사람이 그만큼 고통과 고뇌 속에서 작곡을 했다는 말이다. 베토벤을 괴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상당히 인간적이고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줄 하는 그런 사람이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가 궁중악사였으니까 아버지가 악기창고에 베토벤을 가두고 음악교육을 시켰으니 미치는 것 아니면 음악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작곡을 어떻게 했느냐. 나보고도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곡에는 집중력도 많이 필요하다 우리 집사람도 내가 작곡을 할 땐 싫어한다. 신경질 적이고 잠도 잘 못자고 그런다.
책은 한 달 반 만에 썼다고 했는데 곡은 그렇게 빨리 쓸 수 없다. 3개월은 걸린다. 모든 집중을 그곳에 쏟아 붇고 작곡만을 생각한다.

― 지금도 선생님을 하고 있나
▶ 대학교 졸업할 때 사람은 서울에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왔다. 세종문화회관도 서울에 있고, 지금은 예술의 전당이 중앙무대지만 그땐 세종문화회관이 최고였다. 그래서 선화예고로 가게 되었다. 교사로 생활을 하며 한 가지는 더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유학을 갈 당시에는 교수를 하려고 갔었다. 왜 교수가 하고 싶었냐하면 다른 것 때문은 아니고 고등학교 교사니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더라. 1년 내내 방학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매일 8시 30분까지 출근하는 것이 그땐 힘들었다.

유학을 다녀와 교수를 하려고 했는데, 내가 몰랐던 구속이 있더라. 인맥도 있어야 했고, 교수들이 활동하는 단체에 참여해 보조 역할도 해줘야했다. 그것도 아무나 시켜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밑에서부터 활동하며 교수들한테 잘 보여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1년을 해보니 못하겠더라. 난 작곡가니까. 그래서 후배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명지대학교 교수직과 함께. 어린 시절 너무나 많은 구속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런 구속을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후배는 결국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서울대 ‘교수’라 하면 사회적 지위와 체면도 있고, 난 무게 잡는 것을 싫어하는데, 뭐 출퇴근하는 것도 싫어하고...
그래서 지금은 대입 준비하는 아이들 레슨을 해주면 작곡도 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여유가 있으면 책도 쓰고, 이러한 여건 때문에 곡을 많이 쓰는 편이다.

― 주로 어떠한 곡들을 작곡하나.
▶ 내 곡들은 코믹한 것부터, 가벼운 것, 진지한 것, 휘몰아치는 것 등 다양한 곡들이 많다.
어릴 때의 환경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온 환경에 고마워하는 것은 아니다.
이왕이면 부잣집이면 더 좋을 테고,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쳤다면 또 다른 곡들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정규과정을 통해 내가 작곡가가 되었다면,,하는 생각도 해본다. 작곡가가 안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때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작곡가들이 나오는 일은 드문 것 같다. 누가 나에게 ‘어린 시절로 돌아 갈래?’ 하고 물어본다면 그건 싫다. 왜냐 너무 힘들었으니까.
서울대를 입학했던 것도 운이 좋아서였던 것 같고, 지금 다시 간다고 하면 될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했던 것은 좋은 어머니를 만난 것이다.

― 좋은 어머니의 모습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
▶ 엄마가 아이의 학교를 바래다주고 학원을 바래다주는 그런 경우가 있는데,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그러한 경우도 있지만 엄마자신이 아이에게 모든 것을 거는 경우가 있다. 학생에게는 그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이 될 것이다. 이 사람에게 물어보면 자신은 딸을 위해 희생한다고 답하는데,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대리만족이다.

봉사활동을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자식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압박감 속에 자란 아이들은 정서불안 등 좋지 않은 결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식에게 언어폭력을 하지 않는 것. 나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 직업에 대한 후회는 없는가.
▶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작곡가인 것이 너무 행복하다. 내가 쓴 음악을 누군가가 연주를 하고 관중들이 박수를 쳐준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누구에게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어린 시절에는 천재가 아닌 것에 열등감이 너무 강했다. 근데 지금은 내가 천재들에게 열등감을 가질만한 존재는 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축구를 하는데 전부 국가대표가 안되듯이 작곡을 하지만 작곡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만일지 모르겠지만 난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베토벤이 1이라면 나는 3정도까지는 오지 않았나하는 생각한다. 금메달은 아직 못 땄지만 지금 동메달쯤은 된 것 같다. 행복하다.

― 작곡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떠한 일을 하고 싶나.
▶ 하고 싶은 일이야 많다. 건축 설계나, 산업디자인 같은 것, 응용물리학 등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혼자 하는 것들. 나는 이런 것들이 재미있다.

― 부모가 된다면 책속의 어머니처럼 할 수 있겠나.
▶ 내가 자식들에게... 정말 모순 같다. 어머니가 워낙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누나들도 어머니처럼은 못 하겠다 하더라. 나도 자신은 없다.

― 이 책은 저자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 나는 누군가 작곡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다. 이 책 속에 내가 작곡을 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더불어 늘 현명하셨던 나의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또, 이 책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화장실에서 읽기 좋은 책이 되어도 좋고, 하지만 목적은 아이에게 압박과 부담을 주는 현명하지 못한 부모들에게도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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