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을지언정 물러서지 않겠다” 투쟁 관철할 의지를 보여야 해결책 나올 것
[에브리뉴스=정유진 기자]오늘(2일)은 전국철거민협의회(NCCV, 이하 전철협) 관계자들, 보문5구역 주민들이 힘을 합쳐 투쟁가가 흘러나오는 확성기가 달렸거나 “이주대책, 생계대책 수립하라”, “단결·투쟁” 등의 붉은 색 문구가 부착된 차량 총 9대를 이끌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시청, 서울시청 서소문2청사, 성북구청을 순환 이동하며 보문5구역 재개발로 인해 발생한 철거민 이주대책을 촉구하는 차량 시위를 진행했다.
서울 성북구에 자리한 성북구청 앞은 현재도 강제철거피해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곳으로, 보문5구역 철거민들이 유인물을 나눠주며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서명 운동 중이던 고경희 씨는 “(보상에)주민들이 여기서 수십 년 살면서 쌓아온 가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며 “(중략)1970년대부터 있어 온 철거민들의 비극은 하나도 바뀐 게 없고, 이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내 자식이 철거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건 정말로 아닌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차량에서 내린 철거민들은 투쟁가를 따라부르며 “1989, 기억하라! 2021, 응답하라!”라는 구호를 외친 뒤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는 강제철거에 마음이 무너진다”는 한 발언자는 “철거민 하면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빈민으로만 생각하는데, 저는 폭력적이지도, 이기적이지도, 불순하지도 않다”며 “현실에 맞는 대책이 절실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내쫓는 것은 이웃 나라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모두 입을 모아 “이승로 구청장은 보문5구역 대책을 수립하라”는 구호를 외친 뒤 새로 마이크를 잡은 한 발언자는 “보문동에서 태어나 60년 내 인생을 다 바쳐 이뤄낸 내 집과 일터를 한순간에 잃었다. 보상도 해주지 않고 우린 당장 어디 가서 살란 말인가.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다”며 “재개발로 인해 내 재산은 반토막이 났는데, 왜 보상은 군사정권 때 만들어진 악법에 따르는 것이냐”며 피해사례를 알렸다.
그러면서 “개발을 하려면, 원주민들의 대책부터 마련해야 하지 않냐. 이승로 구청장은 나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요구하며 “형사고발, 소송까지 남발하며 살던 주민들을 협박해 내쫓고 있으니, 이게 바로 ‘사람이 먼저다’라던 문재인 정부의 현주소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다른 발언자도 “나는 억울하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섰다. 내일도 모레도 또 설 것이다”라고 운을 떼며 “십 년을 한 곳에서 열심히 장사하면서 아이들 키우며 감사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가 재개발된다고 하면서 내 삶의 터전을 떠나라 하더니 자기들이 임의로 감정 평가한 금액, 그 쥐꼬리만 한 금액 주면서 나가라고 하더라”라고 토로했다.
그는 “장사하면서 이룬 내 가치, 내 단골들은 하나도 반영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똑같은 금액을 책정하면서, 그걸 보상이라고 하냐”며 “장사하는 사람들이 수십 년 일궈온 가치는 깡그리 무시하고 엄동설한에 내쫓는 게 현실이다. 나는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꿀 뿐이다. 더는 똑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성북구청 앞 기자회견을 마친 뒤 전철협 차량 행렬은 서울시청, 서울시청 서소문2청사를 차례대로 돌았는데, 서울시청 서소문2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다 돌연 이종언 씨(대치3지구 대책위원장)가 뒤로 쓰러져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종언 씨는 몸담던 ‘번듯한 공직’도 버리고 2년이 넘게 길 위의 투쟁을 이어온 사람으로, 재개발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란 상황은 다 겪은 사람으로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했다.
이종언 씨는 급한 대로 서울시청 서소문2청사 내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 쉬기로 했고, 출동한 119 구급요원에게 진찰을 받긴 했으나 투쟁의 현장을 떠나는 것은 거부했다. 명함과 함께 자기소개를 하면서 옆자리에 앉자 그는 “전임 위원장이 우리를 배반해서, 내가 나서야겠다 생각해 직장까지 관두고 이 일에 투신했지만 정말 지저분한 바닥이다, 여기”라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 “누구 하나 우리 철거민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조합과 경찰이 짜고, 시청이나 구청이 합세하고...재개발 지역의 이런 행태 어딜 가나 다 똑같고, 일종의 공식화되어 있는 내용이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온갖 명예훼손, 업무방해, 손해배상 등등 다 걸어요”라는 말로 ‘각종 외압에 불복한 철거민’이 겪는 고초를 설명했다. “구둣발, 운동화로 난리가 된 내 집...차마 볼 수조차 없어 그냥 나왔다. 마음이 짓밟힌 것 같았다”며 본인의 집이 ‘강제집행’됐을 당시의 기억을 털어놓기도 했다.
“관이 끼지 않고는 이렇게 할 수 없다. 나는 이것 꼭 밝히고 싶다. 이런 식으로 개발해서, 억울한 사람이 계속 생긴다는 것은 (이 문제를)개선하지 않고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는 의미다. 내가 꼭 언젠가는 밝히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너무나 많은 약자들이 피해를 보는 현상이기 때문에...21세기에 개발을 하면서 이런 나라가 또 어딨나. (중략)법과 제도를 바꾸기 이전에 사람들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일”이라며 “사람을 돈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결국 퇴근 시간대가 훌쩍 지나서야 서울시청 등에서 성북구청으로 다시 돌아온 전철협 관계자들과 보문5구역 주민들은 둥글게 서서 단결, 투쟁을 외치며 금일 차량 시위를 갈무리했다.
한편 금일 차량 시위에 동참한 전철협의 엄익수 공동대표는 “우리는 줄기차게 앞만 보고 계속 투쟁할 수밖에 없다. 합법적인 방법인 집회와 시위를 통해, 우리는 지킬 건 지키되 목소리는 낸다”며 “하나가 돼서 올곧게 가면 결국에는 문제가 해결될 수밖에 없다. 다치는 사람은 없다는 전제하에, 우리가 끝까지 투쟁할 것이란 걸 인지하면 저쪽에서도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고 보문5구역 재개발 문제도 그렇게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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