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김소진 대표]그 남자의 시선 끝에 우리의 숨겨진 욕망이 있더라…
나는 솔직한 남자가 좋다. 자신의 욕망을 감춰둔 체 점잖은 척 위선 떨며 무게 잡는 권위적인 남자들에게 신물이 난다. 성공한 남자들 중 이런 ‘척’ 하는 남자들이 참 많다. 마광수 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는 윤동주 시인에 대해 “잘난 체하지 않는 쉬운 문장으로, 지금 읽어도 이해되는 문학”이라고 평했다. “나와 윤동주는 솔직한 시인”이라고 했다.
마광수는 1977년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등 6편의 시가 추천되며 26세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2년 뒤, 28세에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전임강사로 강단에 처음 섰다. 1983년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의 논문이 계기가 되어 윤동주가 세상에 널리 제대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84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조교수로 취임했다.
마광수는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했다.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장편소설 <권태>에서 그의 방향성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1991년 주인공 ‘사라’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담은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가 세상에 나오면서 ’천재 시인’, ‘천재 교수’로 불리던 그의 인생은 뒤바뀌었다.
교수와 제자의 성관계, 동성연애 등의 내용이 ‘대학교수가 쓴 음란 소설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며 출간 보름 만에 간행물윤리위원회가 판매금지 처분을 내리면서 모두 수거됐다. 이듬해인 1992년 <즐거운 사라> 개정판이 출간되었고 출간 두 달 만에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 중이던 마광수는 음란물 제작·반포 혐의로 검찰에 긴급 체포되었다. 3년간의 법정 공방 속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었고 판결 다음 날 마광수는 교수직에서 해직되었다.
1998년 사면을 받아 복직한 마 교수는 ‘변태 교수’, “음란 작가’라는 꼬리표로 동료 교수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며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다 지난해 8월 정년퇴임 했다. 마 교수는 퇴임 소감문에서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럽다.” 위선으로 뭉친 지식인과 작가 사이에서 고통 받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여 육체는 울화병에 여기 저기 안 아픈 곳이 없고 인생은 엉망진창이 됐다고 했다. 해직 경력 탓에 명예교수 직함도 얻지 못해 생활고를 겪었고 극심한 외로움과 우울증 증세로 약물 치료를 받아왔던 그는 9월 5일 자택인 서울 동부 이촌동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66세로 생을 마감했다.
마 교수는 문학계의 권위주의, 도덕주의, 엄숙주의, 국민 계몽주의적 문학, 위선 등에 대해강하게 비판했다. 음습한 곳에서만 이야기되던 욕망을 과하게 억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는 성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가 담긴 소설로 권위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했고 자유를 추구했다. 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 만으로 사람들은 마 교수를 야한 소설이나 쓰는 사람이라 품위가 없다고 지탄했지만 마광수는 솔직했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세상과 맞섰던 용기 있는 자였으며 자신의 소신을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던 순수한 남자였다.
마광수의 글은 빨리 읽힌다.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다. 글 어디에서도 교수나 박사로서의 위엄이나 가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요즘 필사에 푹 빠져있다. 첫 책은 글이 뭔지 뭣도 모르고 냈고, 두 번째 책은 얼떨결에 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다음에 책을 낸다면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일까. “작가는 그냥 자기 내면의 충동을 글로 써내려 가는 거예요. 그것 이상도 이하도 없어요.”라는 마광수의 조언을 기억하며 가볍고 친근한 글쓰기를 실천해보련다. 그것이 내가 그를 기억하는 방법일 테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지인 덕분에 마광수 교수의 생전 마지막 시집인 <시선>에 ‘김소진님께, 마광수 드림’ 이라는 짧은 친필 사인을 받아 소장하고 있다. 당시 책에 사인하는 것조차도 힘들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는 지인의 말에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떠올리면 마음이 짠해지며 그의 친필 사인이 담긴 시집이 소중해진다. .
세상에 태어날 때/나는 슬피 울었지만/모두가 웃었고/세상을 떠나 죽을 때/나는 너무 기뻤지만/모두가 슬퍼했다'('마광수 시선' 중 '인생에 대하여' 전문) 세상을 떠난 마광수, 모두가 슬퍼하지만 그는 기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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