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엄성은 기자]“반도체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를 소홀히 해 노동자들을 병들게 한 책임을 통감 하고 제대로 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사업장 환경 관리 감독기관은 작업환경측정과 역학조사를 철저히 하여 반도체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하라.”
“용인의 큐티에스라는 작은 회사에서 삼성이나 하이닉스에서 불량난 반도체 칩을 가져다 리볼(Reball ;재납땜) 하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너무 화공약품에 대해 무지했어요. 그게 제일 후회가 됩니다.”
“고온 납땜시 환기가 너무 안 되어 연기가 많이 났습니다. 아프고 나서 제일 후회하는 게 그런게 몸에 해롭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하는 겁니다. 여러 명이 같이 암에 걸려도 내가 몸이 약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산재’라는 생각조차 못합니다. 이번 산재인정으로 영세한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무엇이 몸에 해로운 지 제대로 알고, 아프지 않게 일할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0일 김경순씨가 2015년 6월 15일에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이 방사선 노출이나 장기간의 야간노동을 수반하는 교대근무 등을 이유로 유방암 산재를 인정한 사례는 있었지만, 업무 중 유해 화학물질 노출에 따른 유방암 발병을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씨는 2006년 9월, 주식회사 큐티에스에 입사해 2011년 11월 유방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약 5년 3개월 동안 삼성전자 온양사업장 등으로부터 납품받은 불량 반도체 칩(납볼)을 화학물질을 이용해 떼어내고 이를 씻어낸 뒤 고온의 설비로 재가공 하는 일을 해왔다.
이 사건 사업장의 상시 여성근로자 20여 명 중 김씨를 포함한 4명에게 유방암이 발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건 요양급여신청을 불승인했으나, 법원이 그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린것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유방암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이 사건 상병의 발병 경로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다소 비정상적인 작업환경을 갖춘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산화에틸렌 등 발암물질을 포함한 각종 유해화학물질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야간·연장·휴일근무를 함으로써 이 사건 상병이 발병했거나, 자연경과적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됐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또한 법원은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점은 증명책임에 있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근로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했다.
“산보연의 역학조사 당시 이 사건 상병의 원인 중 하나인 산화에틸렌의 존부에 대해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공기 중의 유해인자에 대한 작업환경측정도 전혀 실시되지 않았다.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 등에 비추어 보면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해서는 증명책임에 있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인정할 수는 없다.”
“피고는 산보연에 역학조사를 의뢰한 후 역학조사 과정 중 채취한 시료에 산화에틸렌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와 관련해 정성분석이 불가하니 산화에틸렌 가스의 노출량의 확인을 위해 작업환경측정을 하여 재의뢰해 달라는 회신을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역학조사 과정 중 채취한 시료에 산화에틸렌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에 관한 조사를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할 것인데도, 오히려 이러한 피고의 잘못으로 부실하게 된 역학조사를 근거로 이 사건 작업장에는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인 산화에틸렌 등 발암물질에의 노출수준이 매우 낮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불리한 이 사건 처분을 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부당한 처사라 할 것이다.”
법원은 근로복지공단 불승인처분의 근거인 산보연 역학조사의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피고는 아래의 문제가 있는 산보연의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 사건 처분을 한 잘못이 있다. (가) 산보연의 역학조사는 이 사건 사업장이 설립된 이후인 2009년 이후의 자료만을 전제로 이루어진 한계가 있다. 결국 원고가 직전 사업장에서 근무한 2006년 9월 22일부터 2009년 8월 31일까지의 원고의 근무시간, 근무형태, 작업환경 등에 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 산보연은 역학조사 시 이 사건 사업장의 환기시설 등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를 전혀 실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령에 규정한 직업환경측정 유해인자인 스토다드 솔벤트, 니트로메탄, 납, 스티렌, 은, 구리 등에 대해서 전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부실하게 이루어진 용인서울산보연의 2009년 하반기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의 작업환경측정결과로 이를 대신했다. (다) 산보연은 역학조사 시 채취한 원시료 중 일부{BGA 플럭스 UP 78(플럭스 MRA 390), 리볼링 공정에 사용한 플럭스 2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위 작업환경측정결과에 검출된 메틸에틸케톤, 염화메틸렌, 헵탄, 크실렙, 톨루엔, 이소프로필알콜 등에 대해서도 분석의뢰를 하지 않았고, 분석의뢰 시에도 벤젠, 산화에틸렌, 포름알데히드, 메틸렌클로라이드, 스티렌, 1,3-부타디엔만을 분석항목으로 지정했다. 그럼에도 역학조사서에는 채취한 원시료에서 유방암의 발암물질인 1,1-디클로로에탄, 1,2-디클로로에탄, 1,2-디클로로프로판의 함유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기재하기까지 했다. (라) 앞서 본 바와 같이 산보연의 역학조사에서는 이 사건 상병의 주요한 발병 원인 중 하나인 산화에틸렌의 존부에 관한 분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이 사건 소송 과정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제42조)에 의거 사업장으로부터 제출받은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 전문을 법원의 요청에 따라 제출함으로써, 사업장의 유해물질 노출 관리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삼성반도체 사업장으로부터 제출받은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에 대해서는 ‘영업비밀’등의 사유를 들어 법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제출하지 않아, 정부가 삼성전자의 정보 은폐 요구에 무분별하게 협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지적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러한 문제도 전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고 근로복지공단, 반도체 사업장, 사업장 환경 관리 감독기관에 촉구했다.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은 이번 판결을 겸허히 수용하고, 부당한 상소로 당사자의 고통을 연장하지 말라”며 "반도체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를 소홀히 해 노동자들을 병들게 한 책임을 통감 하고 제대로 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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