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제2롯데월드 저층부 조기개장의 마지막 관문으로 불려온 ‘민·관 합동 종합방재훈련’이 23일 오전 실시됐다. 실제 화재현장을 방불케 한 이날 훈련에 대해 전문가 평가단은 “최고 수준의 방재 훈련”이라고, 일부 시민들은 “괜히 왔다. 시시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토록 엇갈린 평가가 나온 가운데 실제 현장은 어땠을까.
불시 훈련인데 핸드폰 만지작, 여유부리는 너 “누구냐”
이날 오전 9시경 제2롯데월드 저층부(캐쥬얼동) 앞에 모인 시민들은 각각 인터넷 예약자와 현장 접수로 나뉘어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을 기입한 뒤 차례로 줄지어 들어 갔다. 9시 40분경 길게 늘어선 시민들의 줄을 따라 저층부로 들어가니 특별한 제지없이 참여 시민들은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불시’라는 단어가 주는 긴장감 때문인지 우려 섞인 표정들도 간혹 보였다.
국내 최초로 시민이 참여하는 까닭에 롯데 측 직원과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들 표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도 불시에 시작되는 훈련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현장에 익숙해보이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있는 직장인 단위의 시민들이 거슬렸다. 시민들은 내부를 둘러보느라 연신 눈을 돌리며 휘향찬란한 내부 인테리어를 살펴보느라 산만했지만 절반 가량은 마련된 의자나 한 귀퉁이에 모여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상황이 익숙해 보이는 이들은 대체 누굴까. 이런 의문은 훈련 직후 이어진 기자 설명회에서 해소됐다. 시민참여단 1203명 중 600여 명이 롯데 측 직원이었던 것이다. 결국 롯데와 관련없는 진짜 시민은 절반에 그친 셈이다.
이영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현장대응단장은 훈련에 앞서 진행된 기자설명회에서 “그동안 방재훈련은 매뉴얼대로 진행했다면 이번 훈련은 시나리오가 없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지만 시민참여라는 말이 무색한 순간이었다.
“최고 수준의 훈련” VS “괜히 왔네”…대피 후 증발한 시민들
기자설명회 직후 10시 20분 사이렌이 울리며 긴급상황이 시작됐다. 곧바로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알아보니 "캐주얼동 1층 길리언초컬릿 매장에 작은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고객 여러분은 직원 안내에 따라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미리 준비한 연기발생기(스모크 제너레이션)와 연막탄이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고, 시민들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왔다. 위층에 있던 시민들은 비상계단을 이용해 신속하게 대피했다. 계단은 조명등 하나 없어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야 했다.
상황 발생 후 약 3분 6초 만에 제2롯데월드에 가장 근접(1.3km)한 잠실 119안전센터 소속 소방차가 도착해 건물 외벽에 물을 뿌렸다. 화재발생 5분 후부터는 인근 송파소방서, 강남소방서, 강동 소방서 등이 속속 도착해 건물 앞과 뒤를 가득 메웠다.
롯데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 시민들은 상황발생 후 약 4분 30초만에 전원 대피를 완료했다. 방재훈련에는 시민 1,203명을 비롯해 서울소방재난본부, 송파경찰서, 송파구청보건소, 한전, KT, 롯데 측 직원 총 2761명이 참여했다.
이날 평가단으로 참석한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방재학과 교수는 “성공적으로 훈련을 마쳤다”며, 윤명오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안전연구소장도 “최고 수준의 훈련”이었다고 추켜세웠고 김종천 롯데물산 이사도 “성공적인 훈련을 마쳤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참여 시민들은 대체로 “괜히 왔다”, “시간 아깝다”, “좋은 구경하고 가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훈련 상황이었지만 대처가 빨랐다던가, 직원들의 호흡이 잘 맞았다던가 하는 훈련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시민참여를 내세웠지만 실제 시민은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훈련 중간 건물 밖으로 나와 살펴보니 그 많던 시민들이 온데간데 없었다. 인근에 있던 롯데 측 직원에게 물어보니 “시민들이 모두 대피를 마쳤다”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현장감있는 훈련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시민들’이 밖에 우두커니 줄지어 있다 그냥 흩어졌다는 얘기다. 롯데 측이 ‘직원을 동원하고’ ‘시민을 들러리 세웠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롯데물산 관계자는 이날 <에브리뉴스>와 통화에서 “시민 평가단이 대표로 훈련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며 “(이외) 시민들은 비상상황에 직접 훈련을 해보는 데 의미를 뒀다”고 말했다.
완벽한 상황일 때 '최고의 결과' 도출
시나리오가 없다는 것도 허울 좋은 말에 불과했다. 시민들은 질서정연했고, 직원들은 일사분란했다. 훈련 목적과 실시 날짜·시간이 대체로 드러난 상황 자체가 시나리오라는 말이다.
게다가 각 소방서에도 이미 지난 18일 방재훈련에 참가하라는 공문이 하달된 상태여서 신고전화만 오면 즉각 출동할 태세를 갖춘 상황이었다.
실제 불이 나면 사람들은 당황해 우왕좌왕하고 소방차도 기다렸다는 듯이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지 않다. 인근에 또다른 사고가 발생해 인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제2롯데월드는 123층(555m)이 완공이다. 오늘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훈련은 6층짜리 저층부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높지 않은 높이, 마침 별일 없는 소방서와 유관기관, 시민들의 침착함, 직원들의 호흡 등 이날 같은 완벽한 조건이 따를 때만 ‘무사고·전원 대피’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시나리오는 없지만 완벽한 상황 설정이 아쉬운 이유다. 이런 까닭에 열흘간의 프리오픈 동안 ‘보여주기’에 불과했다는 지적에 이어 방재훈련 역시 ‘형식적’이라는 비판에선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 저작권자 © 에브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기사제보 : 편집국(02-786-6666),everynews@everynews.co.kr >
에브리뉴스 EveryNews에서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받습니다.
이메일: everynews@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