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앞으로 희망이라는 글자는 빼세요. 죽창 들고 시위를 하다니 전경들이 무슨 죄요.(MaXX)”
“희망버스냐, 범죄집단이냐.(TheXXXX)” “희망, 그런 말 쓰지 말고 잔혹이나 잔인, 무자비 살생버스라 하자.(ForeXXXX)”
“진심 꼴 보기 싫다. 너희 귀족노조 응원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국민 없다. 현대자동차나 그 노조XX들이나 진짜. 대한민국에서 없어져야 할 1순위, 2순위다.(KimXXX)”
현대자동차 ‘희망버스’ 관련 기사에 달린 누리꾼들의 댓글이다. 현대차 희망버스를 비판한 누리꾼의 댓글만 선별한 게 아니다. 댓글 순위 1위부터 주로 상위권에 랭크된 댓글이다. 그것도 보수언론 기사가 아닌 진보언론 기사 댓글이다. 그런데도 비판 일색이다.
통상적으로 인터넷 여론과 국민 여론의 차이가 현격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넷 여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냉소적일 가능성이 많다.
앞서 지난 2010년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한진중공업’, 현재까지 진행 중인 ‘쌍용차 사태’와는 또 다른 여론의 흐름이다.
다음은 주요 언론사 기사 제목이다. <폭력사태 참화 낳은 ‘희망버스’…100여명 부상(조선일보)> <죽봉-쇠파이프 vs 소화기-물대포…勞-使-경찰 110명 부상(동아일보)> <폭력으로 얼룩진 ‘희망버스’, 현대차 노사충돌 100여명 부상(세계일보)> <희망 없고 폭력만…‘희망버스’ 현대차 집회 부상자 속출(국민일보)>
또한 <조선일보>는 “‘희망버스’, 해외로 공장 내쫓는 ‘절망버스’ 될 수도”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기업은 정규직 노조가 횡포를 부리고 희망버스 같은 외부 압박으로 비정규직 고용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 해외로 나가는 길밖에 없다”면서 “현대차 희망버스 역시 국내 공장들을 해외로 밀어내는 절망버스가 돼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충고했다.
현대차 희망버스 보도에 ‘정몽구는 없다’…왜?
정부여당과 재계도 나섰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현대차 희망버스와 관련해 “불법을 통해 희망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로 희망버스가 아니라 ‘절망버스’”라며 “목적(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이 폭력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고 힐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명칭은 희망버스이나 실질은 기획폭력으로 사전에 죽창 및 쇠파이프, 담장을 무너뜨리기 위한 밧줄을 준비해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고 꼬집었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자유민주주의 및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정부당국의 엄정한 법집행을 촉구했다.
현대차 희망버스의 동지는 그 어디에도 없다. 언론은 현대차 희망버스 시위의 폭력성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민주당은 NLL(서해 북방한계선) 대화록 찾기에만 골몰돼 이날 오후 4시 현재까지 관련 논평 하나 내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절망적이다. 국민여론 없이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정치’가 성공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현대차 희망버스는 국민지지를 받는 데 실패했을까. 보수언론의 프레임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귀족노조 프레임 덫에 걸린 것일까.
이 둘의 결합이다. 언론은 ‘폭력’과 ‘외부세력 개입’만 부각한다. 사건의 맥락은 뒤로 감췄다. 지난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차에서 불법파견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태도는 ‘모르쇠’다.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관된 행보다.
그러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 건 투쟁이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17일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송전철탑 농성 테이프를 끊은 것. 이 농성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법의 정의를 살려 달라”는 거다. 이게 현대차 희망버스의 본질이다.
하지만 언론의 단편적 현상에 따른 기사와 현대차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이중성’이 현대차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로 몰고 있다. 그 이중성의 핵심은 ‘평등’이다. 아니 평등이라니, 무슨 말일까.
우리나라는 불평등 국가다. 재벌과 노동자, 갑과 을, 남성과 여성 등이 불평등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사회전체의 비대칭엔 관심이 없다. 반면 개인의 불평등엔 관심이 높다. ‘내 친구의 연봉과 나의 연봉, 내 친구의 대학과 나의 대학, 내 친구의 집과 나의 집.’
사회전체의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치부하면서도 내 친구가 강남 가면 나도 강남에 가야 직성이 풀린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원들의 억대 연봉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그래서 현대차 희망버스에 “억대 연봉 받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야”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현대차 노동자들의 연봉은 정당한 임금협상을 통해 얻어낸 것이지, 불법적인 폭력을 통해 사측을 굴복시켜서 받아낸 게 아니다. 다른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생산성에 맞게 임금을 받아내야지 “나도 조금 받으니까 너도 조금 받아”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현대차 희망버스의 폭력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폭력은 폭력대로 비판하고, 불법이 있었다면 법적 처벌을 받으면 된다. 야권 한 관계자도 기자와 만나 “노조 측이 국민의 눈높이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상에 집착해 본질을 놓치지 말자는 얘기다.
재벌의 권력, 즉 사유권력은 국가권력 아래에 온다. 재벌이 아니라, 재벌 할아버지라도 최고 법규범인 헌법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 이것은 사회적 합의를 마친 일종의 정언명령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에 박근혜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야 하는 이유다.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는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대법원 판결조차 수년째 이행하지 않는 현대차 자본에서 기인한 것이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작 법원판결도 이행하지 않는 대자본의 횡포에 저항하는 방법은 죽음을 무릎 쓰고 철탑에 오르거나 또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자기의 돈과 시간을 써가며 작은 희망이라도 전하려는 노동자, 시민들의 희망버스밖에 없었다.(민주노총 정호희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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