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7월 들어 여의도 정가의 정치이슈가 산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4일 하루만 하더라도 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수정안과 개성공단 실무회담 등 북한발(發) 이슈,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등이 잇따라 터졌다.
반면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헌정유린이라던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는 종적을 감출 태세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를 시작으로 촉발된 시국선언은 각 대학과 학계, 원로,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확산됐지만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현재까지는 이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이 새누리당의 물 타기와 야권의 전략미스가 맞물린 결과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초법적인 국가 쿠데타에 버금가는 국정원 사태에 대처하는 야당의 자세는 어떤가.
야권은 ‘민주 VS 반(反)민주’ 구도로 끌고 갈 수 있었던 국정원 사태를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새누리당에 허를 찔렸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사태의 물 타기를 위해 전면에 내건 NLL(서해 북방한계선) 이슈 때문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국가정보기관의 대선 개입 사태와 NLL(서해 북방한계선) 관계의 공통점. 국정원의 개입이다. 하지만 양자는 별건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이 ‘민주주의’의 문제라면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탈법행위면서도 이슈의 불똥을 엉뚱한 곳으로 튀게하는 럭비공이다.
먼저 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 국정원 심리정보국이 지난 대선 때 한일이라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인터넷 사이트에 ‘홍어’ 등의 지역 비하를 일삼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낯 뜨거운 일뿐이다.
또한 박근혜 캠프 권영세 종합상황실장(현 주중대사) 등과 손잡고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여권에 넘겨준 의혹을 받고 있다. 야권으로선 국정원 사태를 고리로 대여공세를 강화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갖춰진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딴판이다. 민주당이 수세에 몰렸다. ‘헌정유린’에 가까운 정치이슈를 들고도 방어에 급급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물 타기 전략과 민주당의 헛발질이 맞물리면서 불거진 NLL 논란 때문이다.
허 찔린 민주당, ‘친노’ 분열 프레임에 또 당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 의원직을 걸겠다.”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과 정문헌 의원이 이같이 말하자 민주당은 발끈했다.
친노 좌장격인 문재인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회의록 일체를 열람·공개하자고 승부수를 던졌다. 이어 민주당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등 자료일체 공개 안건을 강제 당론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 비판이 일자 당혹스러워하면서 회의록 공개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열람 공개에 대한) 문제제기는 역설적으로 국정원이 대통령기록물을 멋대로 공개한 행위가 얼마나 중대 범죄인지를 역설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또한) 위중한 국가적 범죄 행위였는가를 그대로 반증하는 것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위기의 남북관계-원인과 타개의 길>이란 주제로 열린 조찬세미나 축사에서 한 말이다. 얼마나 수세에 몰렸으면 남북관계 관련 세미나에서조차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열람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했을까.
간단히 정리해보자. 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는 단일 이슈로 끌고 갈 수 있는 의제였다. ‘민주냐 반민주냐’의 문제였다. 이는 특정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이념과 상관없이 지켜야 할, 지켜져야 할 최상의 가치다.
국정원 사태로 궁지에 몰린 새누리당이 NLL 이슈로 물 타기를 시도하자 느닷없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13년 정치판에 귀환했다.
여기에 민주당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승부수로 던지면서 NLL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는 묻히면서 ‘노무현 프레임’이 정치판을 뒤덮은 결과를 초래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첫 번째, 국정원 사태와 NLL 이슈가 짬뽕되면서 구도전선이 흩트려졌다. 민주당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의 당위성을 설명하면 할수록 NLL 이슈가 정치판을 뒤덮었다. 국정원 이슈가 종적을 감추게 된 결정적 이유다.
두 번째, 대선 개입에 이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과정에서 위법성 논란에 휩싸인 국정원에 면죄부를 준 꼴이 됐다. 이제는 그 누구도 국정원의 탈법행위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오직 관심은 ‘NLL 포기냐 아니냐’, ‘NLL이 영토선이냐 아니냐’가 됐다. 새누리당의 물 타기 전략이 어느 정도는 주효한 셈이다.
어쩌면 새누리당이 원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 진실 여부가 아닌 논란,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대선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NLL로 ‘노무현 부활’을 꾀한 선거전략과 판박이다.
쉽게 말해 새누리당의 물 타기는 ‘노무현 끌어들이기→친노 프레임 전면 부각→친노 VS 반노, 분열 프레임 확산→국정원 사태 무마’를 노린 정치전략이었다는 얘기다. 문 의원도 전략가인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새누리당의 정치전략에 허를 찔렸다.
게다가 민주당의 전략적 미스는 국민들에게 숙제를 내준 꼴이 돼버렸다.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면서 국민들은 “NLL을 바꾸자”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인지 아닌지’ 헛갈려 하고 있다.
방법은 하나다. 야권은 의제를 단일화해야 한다. 프레임도 구도전선도 단순화시켜야 한다. 과학벨트 수정안, 북한발 이슈, 을(乙)을 위한 민생법안 등 뭐든지 다 좋다.
다만 국정원 사태와 분열 프레임으로 작용하는 NLL은 별건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서 국정원 사태를 들고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라는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민주당의 NLL 공세는 새누리당의 꽃놀이패다. 이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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