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 개입 파문과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 공개 역풍으로 궁지에 몰린 새누리당이 연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사퇴를 거론,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취지 발언과 이른바 ‘김정일 보고’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언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문재인 공세’의 중심에 서 있어 야권에선 이슈 흩트리기를 통한 물타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 의원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서 드러난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과 관련, “책임질 사람은 따로 있다”면서 “문재인 의원이 사퇴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 의원은 “노무현재단이 저한테 ‘사퇴하라’며 고발 운운했는데, 책임져야 할 분들의 그런 행태에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응수했다.
앞서 정 의원은 전날(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 문 의원을 직접 겨냥해 “민주당은 회의록에서 명백히 밝혀진 진실마저 왜곡하고 호도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이면, 책임지겠다고 말한 문 의원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자신의 의원직 사퇴에 대해선 “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땅 따먹기’ 논란에 불을 지핀 그는 “땅따먹기 발언은 착각이었다. 회의 석상에서 발언하면 면책특권이 있다”고 반박했다.
노무현재단 “국정원 사태, 권력핵심의 조직적인 음모”
이에 노무현재단은 정 의원과 같은 당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 등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로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정치인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맞섰다.
이병완 이사장은 같은 날 서울 마포구 신수동 재단 회의실에서 <10·4 남북정상회담 왜곡·날조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날조한 정문헌, 서상기 의원과 대통령기록물을 불법으로 공개한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회의원직과 국정원장직을 (각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 이사장은 거듭 사자명예훼손 고소 대상자가 ‘정문헌-서상기’ 의원임을 명시한 뒤 “최근 일련의 사태는 단순히 선거전략이 아닌 권력핵심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음모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정문헌-서상기’ 사퇴 압박에 가세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여러 말이 필요 없다. 정치인은 국민과 한 약속은 태산 같은 무게를 지녀야 한다”면서 “국회의원답게 사실 왜곡과 전직 대통령 모욕행위에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정 의원을 향해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없었고 갈등을 협력으로 전쟁을 평화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노고만 확인됐다”면서 “NLL 포기 발언의 최초 제기자인 정 의원은 자신이 장담했던 것처럼 정치생명을 내려놓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날(26일) 권영세 주중대사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커넥션 의혹에 이어 이날 당시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입수해 열람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권 대사는 지난해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지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에서 권 대사가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지인들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언급했다고 폭로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권 대사는 당시 “내가 5년간 외국 정상들을 만나면서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해 왔다”, “나도 제국주의에 대해서 굉장히 나쁜 생각을 갖고 있다”, “NLL 문제는 영토 문제가 아니다”, “절대 헌법적인 게 아니다” 등의 말을 했다.
이는 대선 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사전에 입수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 12월 14일 부산지역 합동유세에서 말한 노 전 대통령의 NLL 대화록과 엇비슷, 여권실세 다수가 NLL 커넥션에 가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여기에 국정원이 대학가의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시국선언’과 관련한 동향 파악을 대학 총장실에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불법 공개와 맞물려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국정원 직원은 최근 인하대학교 총장실에 전화를 걸어 “서울에 있는 대학들이 시국선언을 하는 등 움직임이 많은데 인하대에서는 특별한 활동이 없느냐”고 물으며 사실상 사찰 활동을 했다고 <한겨레>가 이날 전했다.
결국 새누리당의 ‘문재인 사퇴’ 요구는 국정원 대선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대학가 사찰 파문 등의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적 성격이 짙은 셈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의 도가 지나치다”면서 “사퇴할 사람은 문 의원이 아닌 국기문란을 일으킨 새누리당 의원들”이라고 전했다.
한편 문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국정원 사태와 관련, “공개된 대화록에 내용의 왜곡이나 조작이 있다면 더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 대화록이 누구에 의해 언제,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내용의 왜곡이나 조작이 없는지 규명돼야 한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록이 박근혜 후보 진영으로 흘러들어가 선거에 악용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있었던 후보 측과 국정원 간의 결탁을 규명하는 것”이라며 추가 조사와 국정조사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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