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뚜렷이 대비된다. 한 명은 사안마다 돌직구를 날리며 이슈의 전선구도를 명확히 그었다. 다른 한 명은 은유화법을 앞세워 기성 정치권에 도전한다. 지난해 대선 당시 야권단일후보를 놓고 경쟁한 문재인 민주당 의원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 얘기다.
18대 대선 패배 이후 판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대선 정국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기성 정치문법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였다.
‘문재인 대망론’이 불거지던 지난 2011년 상반기. 문 의원은 기성 정치인과는 달리 선거 출마를 주저했다. 그런 문 의원에게 따라다닌 꼬리표는 대통령에 대한 자기 확신이나 결기가 없다는 비판. 문 후보를 두고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지적도 이런 까닭에서 제기됐다.
민주당 대선 경선 첫날인 지난해 8월 25일 문 의원은 손학규·김두관 후보 등 비노(非盧) 측의 모바일 경선 불공정 문제 제기에도 불구, 타 주자들의 의견을 수용하며 갈등을 봉합했고, 안 의원과의 단일화 과정에서도 룰 방식을 위임했다. 문 의원의 ‘통 큰 리더십’ ‘맏형 리더십’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쯤이다.
안 의원도 마찬가지다. 탈(脫)정치를 전면에 내세운 그는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나 지난해 대선 경선에서 타 주자를 압도하는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후보를 양보했다. 안 의원을 두고 “양보 전문가”라는 평가가 뒤따른 이유다.
일각에선 권력의지와 관련해 “애매모호하다”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서울시장 보선 당시 5%후보(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직을 양보한 것만 봐도 안 의원은 확실히 변방에서 온 정치권의 이단아였다.
文 ‘돌직구’? 安 ‘애매모호’?…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범야권의 참패로 끝난 대선 이후엔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 기존 정치문법대로라면 정치적 유배생활이 불가피했던 문 의원은 트위터 정치 등을 통해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야권 성향의 정치평론가가 대선 직후 기자에게 “정계은퇴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인 셈이다.
특히 화법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대선 당시 ‘방어적 화법’을 구사, 이슈 전선 가르기에 실패한 문 후보는 최근에는 워딩 하나로 전선을 가르는 ‘공격적 화법’으로 탈바꿈했다. 다음은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와 관련한 문 의원의 발언이다.
장면 하나) “잘못된 과거와 용기 있게 결별하십시오. 검찰이 이 사건을 역사적 책무감으로, 어느 사건보다 신념을 갖고 반드시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도 검찰도 국정원도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지난 5일 트위터)”
장면 둘) “오늘 수사 결과 발표에 의하면 나는 제도권 진입을 차단해야 할 종북좌파였다.(지난 14일 트위터)”
장면 셋) “그 부분은 솔직히 조금 분노가 치민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16일 북한산에서 가진 간담회)”
다만 문 의원은 산행 정치에서 박 대통령의 책임론에 대해 “이제 와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바람직하지도 못하다”며 “박 대통령이 그 일을 엄정하게 처리해 국정원과 경찰을 바로 서게 만드는 계기로 만들어준다면 그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친노 행보와 관련해 “야권 전체에 친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방증이 아니겠느냐”면서 “민주당도 안철수 신당도 진보진영도 지지부진한 상황이기 때문에 친노의 역할론이 힘이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 의원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발표했지만, 다소 원론적인 워딩이란 비판에 휩싸였다.
“정부나 검찰은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결과에 따라 국민의 신뢰를 얻거나 잃게 될 것이다. 법과 제도는 기득권을 보호하는 기둥이 아니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울타리여야 한다.(지난 11일 기자들에게 보낸 보도자료)”
앞서 안 의원은 지난 2일 “손님이 식당에 갔습니다. 주인에게 뭐가 맛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옆집은 맛이 없다고 합니다”라고 적었다. 민주당 내부에서 ‘안철수 견제론’이 나오자 이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인에게 워딩은 생명이다. 이를 통해 전선을 가르며 판을 짜고 이슈를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초선의원을 거물급 정치인으로 키우는 것은 8할이 워딩을 통한 이슈 가르기”라는 우스갯소리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언론 등도 이들의 발언을 실시간 속보로 내보낸다.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이들의 화법 너머에 있는 발언의 맥락과 본질이다. 최근 이들은 정치개혁과 관련, 자신들의 구상을 선보였다. 문 의원은 당원중심의 김한길호(號)와는 달리 시민참여정당에 힘을 실었고, 안 의원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정치적 좌표로 제시했다.
실제 문 의원은 전날(16일) 산행정치에서 김한길식 정당개혁과 관련해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인 정당 구조가 돼 국민정당으로 커 나가는 것이며 시민참여를 다 잘라버리고 당원 중심으로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친노 프레임과 관련해선 “계파로서 친노는 존재하지 않고 친노라고 할 만한 정치 세력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쪽 성향이 조금 더 개혁적”이라며 “그 사람들(친노)이 계파를 넘어 하나의 정파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주목할 부분이다. 인물중심의 계파가 아닌 ‘깨어있는 시민’ ‘참여민주주의’ ‘온오프정당’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친노를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서다.
인물중심의 친노 계파 프레임을 극복해 분열 프레임 안에 갇히지 않겠다는 속내다. 향후 야권발(發) 정계개편 과정에서 ‘정파’로서의 친노 역할론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와 달리 안 의원은 좌우 이념을 뛰어넘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들고 나왔다. 송호창 무소속 의원은 이와 관련해 “관 주도가 아닌 민간주도로 시민의 자유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이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는 점에서 ‘진보”라고 설명했다. 기존 좌우를 뛰어넘어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안 의원은 지난 14일 6.15 남북정상회담 13주년에 참석해 이와 관련, “그게(진보적 자유주의) 내세울 정도로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내부에서 이념적 정체성 정립을 놓고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안 의원에게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따라 다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 의원도 산행 정치에서 안 의원 측의 정체성과 관련해 “정치적 자유를 뛰어넘어 사회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으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도 진보적 자유주의 입장”이라며 안 의원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독점할 수 없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실제로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의 저서(2000년) 제목이기도 하고, 지지난해 진보3자 통합 당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진보의 미래’에서 주장한 노선이기도 하다.
문 의원이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한 다음날인 16일 안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양자 소주회동과 관련, “사실이 아니다. 다음에 만나자 정도의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안 의원이 문 의원의 비판에 불편한 심경을 표출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지만,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친노는 대선 패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안 의원 측은 자신들의 정치개혁 노선을 명확히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충고했다. 문 의원에겐 ‘노무현 그림자’, 안 의원은 ‘모호함’이 각각 딜레마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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