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장면 하나)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분출되던 1987년 1월 13일 자정 무렵. 박종철 군(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의 하숙집에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이 들이닥쳤다.
공안당국은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인 박종운 군의 행방을 물었지만, 박종철 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모진 고문이 시작됐다. 무자비한 폭행은 물론 전기고문·물고문이 이어졌다.
다음날 박종철 군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채 발견됐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조직적인 사건은폐에 나섰다.
장면 둘) ‘독재 타도-호헌 철폐’의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지던 같은 해 6월 9일.
박종철 군의 ‘고문살인 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준비하던 이한열 군(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이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려졌다. 이 군은 한 달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987년 6월 10∼29일까지 20일간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 학생과 넥타이부대, 시민 등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전두환 독재타도와 호헌 철폐를 외친 시민항전. 같은 해 6월 29일 전두환 후계자였던 노태우로부터 6.29 선언을 이끌어냈던 시민운동. 우리는 그것을 ‘6·10 민주항쟁’이라고 부른다.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6월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됐다. 흔히 민주주의를 “피의 역사”로 부르는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다.
6월 민주항쟁도 피의 역사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자 80년 서울의 봄이 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게 된 것은 전두환 신군부 통치였다.
신군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에게 총칼을 들이대며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일명 ‘체육관 선거’를 장기집권을 이어갔다. 독재를 앞세운 전두환의 철권통치가 강하면 강할수록 재야세력과 학생, 시민의 결세체도 더욱 공고해졌다.
6월 민주항쟁, 대한민국 현대사 전환점
박종철 군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민주화운동은 87년 2월 7일 ‘박종철 군 범국민추도식’을 시작으로, 박종철 군 49재와 고문추방 국민대행진(3월 3일)→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인사의 4·13 호헌조치 비판 시국성명 발표(4월 14일)→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성 폭로(5월 18일)→재야지도자 2200여 명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5월 27일) 등으로 이어졌다.
이한열 군의 사망으로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화룡점정을 이룬 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국민대회를 열고 6월 민주항쟁의 서막을 국내외에 알렸다.
시민들도 기꺼이 동참했다. 같은 날 6시를 기해 거리에 있던 택시와 버스는 경적을 울리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항했다. 시민들은 흰 손수건을 흔들며 민주화운동에 힘을 보탰다.
87년 가장 뜨거웠던 6월에도 국민평화대행진은 끊이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은 6만여 명의 경찰을 배치했지만, 시민항전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은 8개항의 시국수습 내용을 포함한 6·29 선언을 발표했다. 군부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역사적인 장면이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렀다. 전두환 정권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첫 여성대통령이자 과반 득표로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의 민주주의 현주소는 어떤가. 여전히 ‘그들만의 민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정 지역과 특정 세력을 대표하는 과대 대표성으로 인해 논의와 합의과정을 무시한 하위정치문화가 만연해 있고 이념·지역·계층·세대 등을 둘러싼 증오심리도 여전하다.
한국 정치는 ‘87년 체제’를 기점으로 민주주의의 이행기를 넘어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를 지향했지만, 민중이 배제된 소수엘리트를 위한 정당정치 등으로 ‘제약된 민주주의’에 머물렀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색깔론을 앞세운 매카시즘에 갇혔고, 기득권층의 빨간색 낙인찍기 놀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실질적 민주주의 완성은 요원할 뿐 아니라 ‘인민의 자기지배’라는 민주주의 기본정신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절차적 민주화를 이룬 87년 체제 이후에도 한국정치 문화를 지배하는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경제민주화는 더욱 암울하다. 재벌의 비자금 의혹과 슈퍼갑질로 시장질서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문민정부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물결의 파도는 더욱 거세게 일고 있다.
‘1%가 99%’를 독점하는 승자독식 구도는 우리 사회의 지배흐름이 됐다. 새해 첫날 가장 듣고 싶은 덕담은 다름 아닌 “부자되세요”다. 자본논리가 최상위 가치로 둔갑해 천박한 민주주의를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 중이다.
이제 공은 박근혜 정부에게 넘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반쪽짜리 민주주의, 약탈적 자본주의와 단절할 의지가 있나. 이제 박근혜 정부가 답할 차례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시청 다목절홀에서 개최된 제2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불참했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대통령 기념사’를 대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5년의 임기동안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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