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손을 잡았다.
묘한 조합이다. 지난해 18대 대선 과정에서 국회의원 정수와 정당보조금 축소, 중앙당 폐지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개혁안을 내놓은 직후 “정치를 혐오의 대상으로 본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안 의원이 대표적인 정당론자인 최 교수를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이하 내일)> 이사장으로 영입했다.
정치권에선 안 의원 측이 삼고초려를 넘어 십고초려를 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선 직후 미국으로 떠났던 안 의원이 귀국길에 오르면서 공개한 첫 장면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이란 책을 읽는 장면이었다. 이 책은 최 교수가 쓴 것이다.
당시 여의도 정가엔 “안 의원 측이 최 교수를 영입대상 1호로 생각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인재영입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다수였다.
이 조합의 탄생은 최 교수의 주장처럼 안철수 신당이 해방 이래 계속된 협애한 이념체계에서 구축된 보수 양당(새누리당과 민주당)을 깰 수 있고 깨야 한다는 현실성과 당위성이 있어야만 가능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애초 안 의원 측 합류에 미온적이었던 최 교수의 최종 선택은 정치신인 ‘안철수’였다. 전날(22일) 안 의원의 <내일> 출범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 교수는 “그동안 민주당 중심 야권 관점에서 정치적인 자원을 발전시키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안 의원만큼 정치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저에게 집요하게 대한 사람이 없었다”며 합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책임 주체성이 결여된 정치 신인에 불과했던 안 의원과 정당론자 최 교수의 조합.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안철수 신당 창당 작업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고 민주당은 “예상했던 일”이라면서도 “올 것이 왔다”는 당혹감도 엿보인다. 언론은 ‘안철수 신당 창당 신호탄’이란 제목하에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노무현 4주기에 맞춰 진행된 싱크탱크 출범 선언
최 교수는 올 초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 정치는 양당 구조가 기본 틀인데 제3의 정당이 나타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바람직하다. 양당제가 잘못 돌아가면 담합구조가 된다”면서 “안철수 씨가 한국 정치사에 기여하려면 제3의 정당을 만들어서 성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싱크탱크 출범→10월 재보선 전후 신당 창당 작업 본격화→내년 지방선거에서 독자세력화→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양당 체제 재편….’ 안철수발(發) 정계개편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그림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안철수 신당의 출현도 성공 여부도 누가 합류하는지도 아니다. 최 교수의 합류로 안철수 신당의 근원적 토대가, 동력이 기존의 야권의 정치문법과는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 범민주진영의 새로운 정치모델은 참여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시민정치였다. 당시 유시민 개혁당 대표(전 보건복지부 장관, 현 진보정의당 당원)의 정당개혁 운동으로 촉발된 온오프라인 정당의 시민참여 정치모델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깨어있는 시민론과 맞물리면서 이른바 노란 풍선으로 대변되는 참여정치의 시대를 알렸다.
이후 완전국민경선제 등으로 점진적 변화한 시민정치 모델은 민주당의 모바일 경선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곧 노무현 정신이 추구하는 시민주권론이었다.
하지만 안 의원 싱크탱크 <내일>에 참여한 최 교수의 정당정치는 친노의 ‘시민주권론’과는 결이 다르다. 최 교수는 지난 2월 26일 <경향신문>에 ‘마키아벨리의 기능주의’라는 칼럼 기고를 통해 야권의 대선 패배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들은 정당정치 대신 시민정치를 앞세웠고 정당조직보다 뉴미디어를 통한 네트워크 형성과 온라인상의 소통 공간이 더 우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의 정치는 구체적인 삶의 조건을 공유하는 사회집단들을 대표하기 어려운 무형의 정치를 낳을 뿐이다. 나아가서는 짧은 사이클로 변화하는 언론과 정서의 부침에 이끌리는 포퓰리즘 이상일 수 없을 것이다.”
최 교수의 정당정치 강화 논리는 그간 현 진보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이 표방하는 유럽식 진성당원제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면서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과 진보정당 간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도 진보정당도 아닌 안 의원을 선택, 사실상 안철수식 제3정당 창당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안철수 신당이 친노가 추구했던 시민 과잉 정치와 진보진영의 이념적 경직성을 넘어 현실 대안을 만드는 유형의 정치를 추구할 것이란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안 의원은 지난 18일 광주 방문에서 “87년 민주화 이후 형성된 기득권 정치체제를 청산해야 한다”며 “적대적 공생관계에 의한 기득권 정치가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진보정당도 아닌 ‘안철수식’ 정치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재 야권의 정당정치를 시민정치의 과잉으로 규정짓는 최 교수의 영입으로 안 의원은 그간 딱지처럼 따라다녔던 ‘정당부정론자’ 등의 비판을 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친노 프레임을 넘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셈이다.
다만 문제는 친노의 시민정치를 단순히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는 것이 한국 정당사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느냐다.
일각에선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깨는 강한 정당정치의 출현이 시민참여정치를 위축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민정치와 강화된 정당정치의 분업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안철수 신당이 노무현 가치를 넘어 새로운 민주개혁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될지, 아니면 시민참여정치의 축소로 야권의 외연 축소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친노 한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모바일 선거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시민참여를 통한 정치개혁을 부정할 순 없다”고 말했다.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 본부장은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친노 가치와 관련해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가치로서의 친노”라며 “가치로서의 친노는 앞으로 계속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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