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의혹이 여러 갈래로 갈리고 있다. 의혹의 정황증거가 속속 쏟아지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뿐 아니라 야권 인사 옥죄기 등 불법사찰 의혹도 불거졌다. 정국을 강타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정치공작’ 의혹 논란이다.
국정원의 정치공작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할 기세다. 전(前)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을 동원, 정치에 개입한 정황들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
의혹은 양파껍질 벗기듯 계속 나오고 있고 정치개입 범위는 확대되고 있다.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과 트위터 여론조작,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 의혹에 이어 정치적 의제를 희석화하기 위한 문건까지 등장, 국가기관의 전방위적인 정치개입 의혹이 드러났다.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을 공개한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19일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이란 제목의 문건을 공개했다. 지난 2011년 6월 1일 자로 작성된 이 문건은 국정원 ‘2차장 산하 국익전략실 사회팀’에서 작성했다.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3차장 산하 심리전단’ 부서를 넘어 국정원 전체 조직이 대선에 개입한 정황 증거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애초 국정원 일부 조직에만 국한한 것으로 보였던 정치개입 주체 범위가 확대, 정보기관의 ‘사유화’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문건이 작성된 당시 정치적·사회적 핵심 이슈는 반값등록금.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등 진보적 의제로 선거에서 승리한 범 민주진보진영이 두 번째 이슈로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을 정치 의제화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이 문건에는 “야권의 (반값) 등록금 공세 허구성과 좌파 인사들의 인중 처신 행태를 홍보자료로 작성, 심리전에 활용함과 동시에 직원 교육 자료로도 게재”라고 적시돼 있다. 야권의 정책적 의제를 정치적·사회적 의제로 격상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관의 전방위적인 정치개입 의혹이 두 보수정권에 걸쳐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원순 제압’ 문건과 ‘반값등록금’ 문건을 작성한 2차장 산하 국익전략실 사회팀 중 일부 고위 인사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로 파견된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관측에 힘이 실린다.
朴대통령, MB색 지우기 놓고 고심 깊어질 듯
<경향신문>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로 파견된 국정원 전직 직원은 추모 씨로 현재 2급 상당으로 청와대에 파견돼 있다. 추 씨는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 강등당한 뒤 박근혜 정부에서 중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반값등록금 문건과 관련, 이르면 주중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당시 2차장, 국익전략실장, 추모 씨 등 관련자를 고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 정치개입을 고리로 한 야권의 대여 공세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20일 국회 브리핑에서 “국정원 정치개입 문건 작성자가 현재 청와대에 근무한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국정원이 자행한 헌정질서 파괴,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박근혜 정부로선 절체절명의 위기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에게 현재 난국을 타개할 묘책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원칙만을 앞세워 검찰의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수사를 강조할 수도, 야권이 요구하는 국회청문회 등을 수용키도 쉽지 않다.
가뜩이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으로 국정동력이 한층 약화된 상황에서 전 정권의 국기기관 사유화 논란이 박근혜 정부로 튄다면, 국정 주도권을 야권에 뺏길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선을 그을 수도 없는 처지다. 박근혜 정권의 소극적 태도는 곧 이명박 정권과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실토하는 꼴밖에 안 된다는 비판도 이와 맞물려 있다. 박근혜 정부가 ‘MB 색’ 지우기를 놓고 딜레마에 빠진 까닭도 이런 맥락이다.
이상돈 전 새누리당 정치쇄신 특위위원은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정원 게이트’와 관련,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을 볼 수 있는 하나의 리트머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를 떠나서 이것은 MB정권 전체를 심판대에 올릴 만한 중대한 사안”이라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같은 날 기자와 통화에서 “정권 차원에서 정보기관을 정치흥신소처럼 사용한 게 아니냐”면서 “검찰 수사 부분이 남았지만,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이날 발표된 주간 정례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윤창중 성추행’의 영향으로 6주간의 상승세를 마치고 하락세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취임 12주차(5월 셋째주) 국정수행 지지도는 전주 대비 2.8%P 하락한 53.1%로 조사됐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36.7%로 4.9%P 상승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13∼16일까지 4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천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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