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유죄 인정한 원심 파기환송…본인 동의 없으면 위법수집증거
[신종철 기자]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라는 이유로 가족에게만 동의를 얻어 채혈해 얻어진 혈중알코올농도는 음주운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범죄사실에 따르면 K(53)씨는 2009년 7월 11일 새벽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근린공원 인근 횟집에서 후배와 술을 마신 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넘어지는 교통사고가 났다.
K씨는 의식을 잃고 119구급차량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고, 병원에 온 경찰은 K씨가 의식이 없자 딸의 동의를 얻어 혈액을 채취했다. 경찰은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고, 감정의뢰 결과 K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64%로 측정됐다.
이에 K씨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2단독 한원교 판사는 지난 1월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 판사는 “경찰은 피고인의 딸로부터 혈액을 채취하는 것에 동의 받았을 뿐, 피고인이 동의한 바 없고, 피고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수사기관이 채혈을 하기 위해서는 법관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함에도 사전 또는 사후에라도 영장을 발부받은 사실이 없으므로, 이런 채혈로 얻은 혈액에 대한 감정결과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로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따라 증거로 쓸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검사가 항소했고, 의정부지접 제2형사부(재판장 박인식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K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유죄를 인정해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도로교통법은 음주측정을 거부하는 자를 음주운전에 준해 처벌하고 있으므로 혈액 채취 당시 의식이 있었다면 호흡측정에 응하거나 채혈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은 점, 음주운전을 했다고 볼 만한 명백한 사정이 있음에도 운전자가 의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하면,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이루어진 혈액 채취 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피고인의 혈액감정 결과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이어 “음주운전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혐의자가 의식이 없어 본인의 승낙을 얻을 수 없는 경우, 병원 의료진이 가족 등의 동의를 얻어 피고인으로부터 채취한 혈액을 감정한 결과는 증거능력이 있다”며 “그럼에도 증거능력을 부정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은 사실을 오인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K씨가 상고했고, 대법원 제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혈중알코올농도 0.164%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몬 혐의(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로 기소된 K(53)씨에 대해 벌금 15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음주운전 중 교통사고를 야기하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에 후송된 피고인에게 의식이 있었다면 혈액 채취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가 의식불명일 때 그의 가족이 혈액 채취에 동의한 사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이 사건 감정의뢰회보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통해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위법하게 채취된 피고인의 혈액에 기초해 획득된 감정의뢰회보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정도의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감정의뢰회보를 유죄의 증거로 삼아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므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하기 위해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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