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집회광장으로 변한 인수위 앞..."조선시대 신문고 부활?"
[현장스케치]집회광장으로 변한 인수위 앞..."조선시대 신문고 부활?"
  • 이광명 기자
  • 승인 2013.01.10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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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수위 앞 시위 현장
[에브리뉴스=이광명 기자]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6일 출범한 이후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결정된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은 조선시대의 신문고 제도가 부활한 듯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일반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매서운 추위에도 하루 평균 10여 건의 각종 민원과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 정권에서 당한 고통과 어려움을 새로운 대통령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저마다 품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현재 시민들이 두드리는 ‘북소리’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귀에 잘 들리고 있는지는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밀봉 인사’부터 시작해 ‘깜깜 인수위’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현재 박 당선인이 어떤 정책을 구상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가 인수위 앞에서 만난 시위자들은 춥고 고될 텐데 왜 굳이 이곳까지 와 시위를 하는 것일까.

본사랑교회 김화경 목사는 “그래도 이곳에 서 있으면 이렇게 언론사들이 와서 취재라도 하고, 그걸 박 당선인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힘들어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속이 타는데 몸이 추운 것은 대수도 아니라는 반응이다. 다들 아침 일찍부터 나와 오후 늦은 시간이나 저녁 무렵까지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금속노조 만도지부 김창완 전 지부장은 관심이라도 보이는 인쉬위원들은 있었느냐고 묻자 “출퇴근길에 얼핏 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다가와 무슨 일이냐 묻는 위원은 한 명도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 인수위 앞 시위 현장
인수위 앞에서 시위를 하게 된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검찰 비리’, ‘용산참사 문제’, ‘사법 피해자’, ‘불법체포 및 가혹 수사 피해자’, ‘만도 기업 노조탄압으로 인한 부당해고’, ‘한진중공업 사태’,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을 빼앗긴 일’ 등 이들의 이야기만 간단하게 들어보는 데도 2시간여가 걸렸다.

김화경 목사는 “박 당선인이 국민에게 신뢰의 정부를 약속했는데 부정부패를 바로 잡아주지 않고서 그대로 정부가 출범한다면 앞으로 5년의 정책은 안 봐도 뻔 할 것이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참사와 관련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 30대 여성은 “돌아오는 1월 20일이 용산참사 4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박 당선인이 국민대통합을 얘기하는 만큼 정확한 입장표명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또한 사실을 증언했을 뿐인데 위증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주 여성 노동자 심춘자씨는 “법무부,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검찰청장, 중부경찰서, 중부지방경찰청, 대통령 민원실까지 다 억울함을 호소해 봤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어 박 당선인에게 이 무고한 사람의 아픔을 봐달라고 이곳에 왔다”며 “행복한 나라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짓말한 사람들은 무혐의로 풀려나고 진실을 말한 나는 죄를 받느냐”며 울먹였다.

지체 장애 2급으로 휠체어를 탄 채 강북구 수유동에서 온 이은훈씨는 “경찰이 폭행당하는 나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사유조차 밝히지 않고 불법체포해 갔다”며 “17시간 동안 밥 한 끼도 주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안 재워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 뒤 시경감찰팀에서 불법체포, 가혹행위, 인권유린을 모두 인정은 했지만 아무 조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소시민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밑바닥 민심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며 “큰 정책만 내세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저희 같은 소외계층의 작은 목소리를 들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창완 전 지부장은 “사측에서 올 초부터 노조를 깨려고 작정하고 준비를 했던 것 같다”며 “연간 2800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일하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 질병을 앓고 있는데, 합리적인 요구를 하며 몇 시간 파업을 한 것을 가지고 불법집단행동으로 몰아 해고까지 시켰다”고 억울함을 드러냈다.

더불어 “(인수위가) 앞으로 정치를 어떻게 할지 구상을 하려면 여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는 공간과 쉴 공간도 마련해 주고, 막으려고만 말고 기자회견실도 열어주고 그래야하는데 그런 자세가 안 된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박찬규씨는 “계속해서 우리의 요구를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회사 입장은 그대로다. 길어질 것 같다”며 “조속히 해결되면 좋겠다”고 짧게 답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땅을 찾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정복순씨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 땅에 머물다가 45년도 광복 때 길이 막혀 한국으로 오지 못했다. 90년대 초 개방은 됐지만 절차가 복잡해 2001년 돼서야 들어왔다”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조선 사람이니 언젠가는 한국에서 살 마음으로 사놓은 땅이 있는데 나는 죽어서 못가지만 너희가 가서 찾아보라'고 하셨다. 한국에 돌아와 땅을 찾으려고 했지만 누군가 이 땅을 죽은 사람에게 샀다며 소유권을 이전해 갔더라.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찾을 수 없다고 했다”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또한 “대한민국에는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할 길이 없다. 이렇게 정의감 없는 국가가 어떻게 선진국가가 되겠냐”며 “그래도 새 대통령도 나오고 하니까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와봤다”고 시위현장에 온 이유를 밝혔다.

▲ 인수위 앞 시위 현장
한편 지난 9일 인수위는 국민들의 국정운영 아이디어와 각종 민원들을 수용하기 위해 ‘국민제안센터’를 조만간 문을 열 인수위 홈페이지에 개설할 방침을 정했다. 아울러 오프라인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방안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창구가 없어 혹한 속에서도 인수위 사무실 앞에 피켓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국민들의 억울함이 다소 풀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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