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민혁 기자] 국선변호인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에 피고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다면, 법원은 항소이유서 제출기간 경과를 이유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할 게 아니라 국선변호인을 교체해 항소이유서를 제출할 기회를 다시 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지난 16일 국선변호인이 법정기간 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아 항소가 기각된 A(75)씨가 낸 재항고 사건에서 원심 결정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피고인과 국선변호인 모두 법정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피고인의 귀책사유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소송법 조항을 적용해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해 온 종전의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이번 결정에 따라, 앞으로 피고인의 귀책사유 없이 국선변호인의 태만이나 불성실 등으로 인해 법정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피고인은 새로운 국선변호인을 통해 본안판단의 기회를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1심에서 벌금형 유죄판결을 받은 A(75)씨는 항소했고, 항소심은 70세 이상인 A씨에게 형사소송법에 따라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줬다. 그런데 국선변호인은 A씨에게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겠다고 했으나, 법정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항소법원은 A씨와 국선변호인 모두 법정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자 A씨는 “국선변호인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데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도 항소가 기각돼 억울하다”며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이와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다시 항소이유서를 제출할 기회를 줘야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국선변호인이 모두 법정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선변호인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데 대해 피고인에게 귀책사유가 있음이 특별히 밝혀지지 않는 한, 항소법원은 종전 국선변호인의 선정을 취소하고 새로운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다시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함으로써 새로운 국선변호인으로 하여금 그 통지를 받은 때로부터 법정기간 내에 피고인을 위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소송절차에서 국선변호인이 선정된 경우 국선변호인으로부터 충분한 조력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는 공판심리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항소이유서의 작성과 제출 과정에서도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원심은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하고 새로운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그에게 항소이유서를 제출토록 하는 조취를 취했어야 한다”며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곧바로 A씨의 항소를 기각한 원심은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에 관한 헌법 및 형사소송법상의 법리를 오해해 판단을 그르친 것”이라고 판시했다.
반면 전수안, 양창수, 이인복, 이상훈 대법관은 “A씨의 항소를 기각한 것은 정당하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들은 “다수의견의 태도는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령에 명시돼 있지 않거나 그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 내용을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로부터 직접 도출하려는 시도로서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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